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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니스동향 ★ 예수님은 왜, 바다 위를 걸으셨나? (마14:22~33)
관리자 (tong) 조회수:50 추천수:0 125.143.145.195
2019-05-20 11:39:32

예수님은 왜, 바다 위를 걸으셨나? (마태복음14장22절-33절)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은 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배를 태워 강 건너편으로 보내셨다고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만족하게 끼니를 해결한 군중들이 예수님이야말로 고기 반찬으로 식탁을 차려주실 '메시야' 라고 확신했던 것이죠.
그래서, 군중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 하려고, 분위기가 긴박하게 돌아갔다고, 요한복음은 전합니다.

이런 '메시야 추대' 소동에 제자들이 휩쓸리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급히 조치를 취하시고, 모인 백성들은 다 해산 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겨우 '이생의 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자기 몸을 '속죄의 제물'로 주심으로,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근본적으로, 우리를 구원하고, 영생의 복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환호에 답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십자가의 때가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기도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배를 타고 떠난 제자들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녁 무렵, 배를 타고 갈릴리바다를 건너기 시작한 제자들이 한밤중이 되어서도 여전히 바다 가운데서 표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24절에, "배가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제자 중에 뱃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경험'만으로는 배를 컨트롤 할 수 없을 만큼 거센 바람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제자들이 풍랑 속에서 '고생하는 것을 다 보고 계셨다.' 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은 이 사건을 통해 '무슨 메시지를 주시는 것' 일까요?
오늘 '갈릴리 바다의 시련' 은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늘 대비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구하기 위해, 신속히 내려오지 않으신 것은 "어떤 시련들은 오랜 시간 우리를 괴롭힌다는 것이고", "이런 시련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를 단련하고 훈련시키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이런 시련의 때를, 우리가 "항상 대비해야 하는 것"이고, "뜻밖의 고난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은 "강한 믿음"과 "담대한 마음" 뿐입니다.

갑자기, 질병으로 몸이 무너지고, 가정이 깨질 정도의 관계적인 문제들이 터지는 데, "그게 돈으로 해결이 되겠습니까?"
"믿음이 강해지고", "마음이 단련이 되어야", 부딪혀 이겨내는 것이죠.

'잠언 24장 10절'에서 말씀하잖아요.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낙담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도우시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신앙의 훈련을 꾸준히 계속해서 해나가야" 합니다. "기도훈련, 성경공부, 큐티" 를 통해서, "매일의 삶에 적용하는 훈련" 등, "이런 것 없이, 격한 풍랑을 이겨낼 재간이 없습니다".
"연단과 훈련이 부족할수록", 그만큼 힘들게 인생의 풍파와 싸우고, 번번이 상처와 손실을 크게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믿음이 강할수록 사는 힘도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날 시련을 통과하며, 배울 것을 다 배운 다음,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이들에게 오십니다. 분명히, 이날 밤, 풍랑 속에서의 사투는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지쳐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때에 오신다는 것' 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가 가장 좋은 때임"을, 우리는 "스스로에게 각인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서두르다 실패하거나, 보채다 낙담하지 않게 됩니다.

그 때, 예수님은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말라"고 하시며, 제자들을 위로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신 기적' 에는 '제자들의 고된 시련을 도와주시기 위한 주님의 마음' 이 분명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자연과 만물을 창조하셨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으로서의 권능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너울이 높게 이는 깜깜한 바다를 걸어오시는 모습은 얼마나 장엄하고 위엄이 서려있습니까?
그런데, 꼭 그런 이유만으로 바다를 걸어오셨다는 것은 왠지 석연치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제자들도 다급했고, 거기엔 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배가 없다고, 물 위를 걸어오시다니요. 이건 예수님답지 않습니다.

또, 제자들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앞에 보면, 벌써 말씀으로 파도를 꾸짖어서 잠잠케 하신 얘기가 나옵니다. 그렇게 특이한 기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실 이유는 없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께서 바다를 걸으신 기적은 다른 기적들처럼 메시야의 사역과 관련시켜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메시야가 바다를 걸으신다는 것이 구약성경에서 예언되었냐는 것과 또 그 의미가 무엇이냐를 찾아봐야 합니다.

우선 여기서, 제자들을 괴롭히고, 난동을 부리는 '흉악한 바다' 는 성경에서 종종 '악의 세력을 상징' 합니다. 성경 많은 곳에서 바다를 '마귀의 세력이 있는 곳' 으로 묘사합니다.

사탄의 출생과 타락에 대해 기술한 내용으로 알려진, '에스겔서 28장'을 보면 이렇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사탄이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에 견주어 바다를 차지하고 앉아있다는 것입니다. 바다는 곧 '사탄이 자리를 편 세속 세상을 상징' 하는 단어라는 것이죠.

또, '이사야서 27장'을 보면 이렇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그 날이 언제를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악을 징벌하고, 세상 거민들에게 평화를 주실 '메시야의 날' 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13장1절,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여기서도, 바다에서 마귀가 나온다고 하죠? 이렇게 사탄을 바다와 비유한 내용들이  성경에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굳이 밤에 날뛰는 바다 물결을 밟고 걸어오신 것은, '사탄의 세력을 발로 밟으신다', 즉, '그 세력을 파멸하시는 구속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시는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 뿐 아니라, 사탄의 세력은 멸망시키시는 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 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하박국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악을 심판하실 것을 이렇게 예언합니다.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하나님이 권능으로,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바다, 큰 물의 파도를 밟으실거라는 것입니다.

이 예언대로, 지금, 예수님께서 악을 심판하고, 구원을 이루실 분임을 보여주신 것이죠.
그러니까, 뜬금없이 베드로가 자기도 좀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오라고 그러시잖아요?
이게 무슨 ‘믿음이 있으면, 너도 물 위를 걷게 된다’ 그런 차원이 아닌거예요. 믿음이 있어서, 물 위를 걸을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이 내용은 제자들도 결국 '예수님의 능력으로' 세상에서 악의 세력들을 밟게 된다는 의미가 맞는 것이죠.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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